기사 메일전송
[이경국 칼럼] 유희경과 이매창의 사랑
  • 이창준 기자
  • 등록 2026-02-07 12:45:47
  • 수정 2026-02-07 15:01:38
기사수정

이경국(칼럼니스트. 박약회 운영위원)

조선시대 3대 여류 문장가는 황진이, 허난설헌, 이매창(李梅窓)이다. 그 중 이매창과 유희경의 사랑은 애절하고 가슴 적시게 한다. 


도봉산을 일주일에 두 번씩 산행 하는 모임이 있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동참하여 자주 오르고 있다.


<이매창 유희경의 詩碑>가 있는데 일부러 가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매창은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명기로 시와 거문고에 능했다. 매창집에 한시 58편을 남겼다.


매창은 천하일색의 미모였지만 38세에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자고로 미인은 박명이라 했다. 하늘이 시기하는지 미인은 대체로 오래 살지를 못한다.


매창과 사랑에 빠진 유희경은 천민출신이다. 1년 간 요샛말로 진하게 사랑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운명의 사랑이었다.


유희경은 도봉서원 창건 시 책임을 맡았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을 일으킨 공로가 큰 분이다.


도봉서원은 지금 터만 남아 있다. 조광조와 송시열의 위패를 모셨던 서원이다.


전북 부안이 공원을 조성해 매창을 기리고 있다.


유희경은 1590년 부안에 내려왔다가 운명적으로 매창을 처음 만나게 된다.


살아서는 사랑으로 죽어서는 시비에 시가 나란히 있으니 두 연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먼저 매창을 죽을만치 사랑한 유희경의 시다.


       <매창을 생각하며>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치우쳐도 서로 못 보니 오동잎에 비뿌릴 제 애가 탄 다오.


서울과 부안은 상당히 먼 거리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을 진데 얼마나 그리웠을까?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 하는 시는 더욱 애절하다.


        <이화우 흩뿌릴 제>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이 져도 날 생각 하는가 

천리에 서러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연인이 서로 애타게 절규하는 마음을 담은 시다. 시비를 한참 동안 바라 보면서 필자는 연심(戀心)에 대한 생각에 깊이 잠겨 본다.


필자는 이 시를 감상 하면서 청룡사 우화루(雨花樓)가 연상된다. 단종이 귀양 길에 정순왕후와 마지막 묵었던 곳이다.


청계천 영도교에서 이별을 했다. 그 뒤 영원히 볼 수 없었다.


매창이 읊은 시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금가락지> 란 제하의 시다.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희었어요. 

소첩의 맘고생 알고 싶으시면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어요.


인간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듯이 지극하게 님이 그리우면 몸이 수척해 질 수 있다고 본다. 얼마나 혹애 (酷愛)의 감정이 깊었으면 금가락지를 낀 손가락이 헐거워지고 말았을까...


이 표현은 매창의 문학적인 섬세함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매창이 단명한데 비하여 유희경은 92세까지 장수했다. 


글로서 연심(戀心)을 이렇게 남겼으나 만나지는 못했다. 


시비(詩碑)가 있는 곳은 평탄한 코스다. 일행 가운데 조계사 단장을 지낸 분(95세)의 짧은 법문을 들었다. 


도봉산 쾌적한 공기 속에서 세속에 찌든 영혼을 맑게 해준다. 숙세(宿世 : 전생)의 인연으로 뵙게 되었으니 하늘의 복을 받은 듯 필자는 행복하기만 하다.


조선시대 기녀의 문학성과 기예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특히 정비석의 <명기열전>이나 이은식 박사의 <기생, 문학으로 말하다>를 열독하면 시심(詩心)에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0
여명의식탁_250930
대구도서관
사이드 기본배너01-유니세프
사이드 기본배너02-국민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